변호사의 삶 5. 갇힌 자를 대변
변호사의 삶 5.
갇힌 자를 대변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하면 서가에 기록 봉투가 빼곡히 꽂혀있다.
봉투는 대개 두 가지 색으로 나뉘는데,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으로 크게 구분하는 편이다(국선을 하는 분들은 일반 대봉투를 별도로 사용하기도 함).
사건 봉투 하나는 변호사에게는 수입의 증거이자 채무 존재를 각인시키는 상징이고,
의뢰인에게는 삶에 있어서 가장 치열한 전선인 셈이다.
형사사건 중 구속 사건을 선임하는 변호사는 구금된 장소에 접견을 가서 피의자(또는 피고인)을 만나 변론 진행 방향을 의논하게 된다.
변호사님들 중에서는 접견 가는 것이 싫어서 구속 사건 수임을 피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나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편임).
우선 접견 자체가 구치소 등을 찾아가서 엄격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지고, 갇혀 있는 사람은 인생에서 최대의 고통스런 순간이기에 그런 의뢰인의 고통이 그대로 변호사에게 전달되는 편이다.
접견시 사건에 대한 상담도 이루어지지만, 때론 인생에 대한 상담도 이루어진다.
구금된 의뢰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오로지 석방이다.
석방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영혼까지 걸 정도로..,
특히 결심 이후 선고를 앞둔 사람들은 온 신경이 향후 선고 결과 석방이 될지 여부에만 쏠리게 된다.
변호사에게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묻고 또 묻는다.
석방이 어려운 사건이면 최대한 에둘러가면서 언질을 주는 편인데,
정말 석방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경계선 상의 사건인 경우는 변호사로서는 외줄을 타는 심정이 되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사건은 담당 재판부의 법관 아니고서는 알 수도 없는 것이고, 심지어 법관 조차도 결심이 안 서있거나 합의부라면 아직 합의가 안 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갇힌 사람들은 변호사에게 그 결과에 대한 언급을 받기를 원하고, 변호사가 흘리는 사소한 말 한마디 조차 곱씹고 또 되새기는 것이다(동료 변호사님들께서는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하다).
아마 두 부류로 나뉠 것 같다.
전자는 가급적이면 희망적으로 석방가능성을 언급하는 분들이고,
후자는 신중하게 결과에 대한 예측이 쉽지 않다고 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실제론 후자가 더 정확한 의견이 되지만,
갇힌 사람들은 절대 그런 대답을 듣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래서 전자의 입장을 택하여 희망적으로 석방의 가능성을 언급하면 이는 후일 다른 결과가 나올 때 변호사에 대한 책임 추궁의 도구로 전환되기도 한다(협회의 일을 맡고 있으면, 형사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석방을 약속하면서 수임을 했다는 식의 진정이 제법 접수되는 편이다).
정말이지 어려운 순간이고 정답도 없다.
오늘 두 사람을 접견하고 나오면서도 같은 고민을 하고 나왔다.
두 사람에게 모두 신중하게 결과에 대한 예측과 변수 등을 언급하면서도 끝에는 희망적인 결과 예측을 전달했다.
굳이 갇힌 사람에게 희망의 싹 마저 잘라버릴 필요는 없으니까....
또한 희망적인 결과를 예측하면 변호사도 어느새 그런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은 긍정적인 기분이 들기도 하기에....
여담이지만 내가 아는 선배 변호사님 한 분은 의뢰인이 물으면,
"무조건 석방된다. 만약 석방이 되지 않으면 내가 땅굴을 파서라도 꺼내 주겠다"고 너스레를 치는 분도 계신다.
그말을 의뢰인이 믿을리야 없겠지만, 그런 명백한 흰소리마저 갇힌 사람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는 것이다.
변호사는 갇힌 사람들이나 불행한 순간을 겪는 사람들에겐 사방의 적에게 포위된 의뢰인을 구해서 나갈 유일한 내편이다.
마치 조자룡이 어린 유선을 품고 단기필마로 적진을 헤쳐나가는....
2021년 4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