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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삶 9.
숙명적인 사건 이야기
(스무여섯살 혜영씨의 죽음)
변호사를 하다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건들이 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내게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들이 꽤 있다.
형사사건이나 결과가 나쁜 사건들은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내용을 있는대로 밝히기가 어렵다(이런 사건들은 시간이 더 흐르면 후일담이 가능할 수도....).
오늘 하고 싶은 사건 이야기는 스무여섯 살에 꽃같은 청춘을 마감했던 혜영씨 이야기다.
이 사건 이야기는 경남도민일보 전 편집국장 김주완님의 블로그에 관련 이야기가 여러 꼭지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덕분에 다음 검색창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이 사건 이야기가 뜬다).
내가 이 사건을 맡게 된 것은 돈을 벌려고 맡은 건 아니었다.
오로지 피지도 못한 채 고단했던 삶을 마감한 혜영이라는 아가씨의 인생 이야기를 누군가는 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혜영씨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남동생과 같이 자랐다.
부족한 살림살이 때문에 일찍 철든 그런 아이였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 4년 평점이 거의 만점에 가까왔을 정도로 악착같이 학교생활을 했다.
공부를 잘 했지만 어머니마저 편찮은 상태가 되자 취업을 선택했다.
지역에 있는 중견기업에 취업은 하였으나, 회사에서는 박봉에 커피 심부름을 하는 정도의 대우를 해주었을 뿐이다.
혼자 벌어서 어머니와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던 혜영씨의 입장에선,
다른 직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팔용동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복합 아울렛 매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그 안에 쇼핑몰을 운영할 업체에서 구인 공고를 냈고 혜영씨는 그 업체에 지원하여 합격을 하게 된다.
혜영씨는 입사를 하자 마자 매장의 오픈 준비를 위해 거의 한 달 정도를 하루도 제대로 쉬지 않고 밤 열두시 넘어서까지 일을 했다.
혜영씨는 집이 진해였는데 그 시간에는 팔용동에서 진해를 가는 대중교통도 없었고 젊은 여성이 심야에 혼자서 택시를 타는 것도 어려웠으며 비용도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중고)경차를 구입하여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혜영씨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오픈을 하루 앞둔 날 고생했다며 회식 자리를 가졌다.
혜영씨도 회식 자리에 참석은 했으나, 중간에 다시 나와 사무실로 가서 마지막 정리업무를 또 하고서야 퇴근길에 올랐다.
혜영씨가 혼자 운전한 차량은 자정을 막 넘긴 시각에 안민터널 들어서기 전 길 옆에 있던 전봇대를 들이 받고 멈췄는데,
그 사고로 혜영씨는 어머니와 남동생과 영원한 이별을 했다(추측컨대 연일 계속된 과로 상황에서 졸음 운전을 하지 않았나 싶음).
이 사고는 운전자의 과실에 기한 사고 정도로 묻히는 사건이었다.
유족들이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산재 승인을 신청했으나 불승인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에선 기각되었다.
그 상태에서 어머니가 날 찾아 왔다.
내가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건강 상태가 매우 나빠 보였다.
아마 자식을 잃은 슬픔이 원래부터 안 좋은 건강상태를 악화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혜영씨 사건은 당시 법적인 시각에서 살피면,
이른바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였다.
그 당시는 공무원은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고 있었지만, 사기업체의 경우는 인정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사기업의 경우 예외적으로 기업이 제공한 출퇴근 수단을 이용하다가 사고가 나면 업무상재해로 인정을 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인정을 받을 수가 없었다.
1심에서 유족이 패소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난 혜영씨 어머니에게 이 사건의 법적인 쟁점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이 건은 대법원까지 가서 판례를 하나 만들어야 겨우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며 변호사 비용은 안 받을 테니 인지대 등 소송비용을 부담해 주면 대법원까지 소송을 맡아서 진행하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내 제안을 받아 들여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며 사건은 계속 되었다(그후 이 사건은 파기환송시을 거쳐 최종적으로 유족들이 승소하였고, 나도 얼마간의 사례금을 받은 것 같다).
2심에서 치열하게 입증자료를 모아서 제출했다. 당시 다른 대체 교통수단이 전무했던 점, 회사에서 업무를 마치고 순로를 따라 귀가하다가 사고가 난 점, 입사 후 사고일까지 한계상황에 다다를 정도로 과로가 있었던 점, 회사에서도 혜영씨가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차량 유지비를 지급하였던 점 등의 사정들에 대해 사실조회, 진술서, 증인신문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입증을 했었다.
2심 선고 결과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었지만 패소를 했다.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상고이유서에는 그 당시까지 대법원에서 예외적으로 업무상재해로 인정한 케이스와 혜영씨 사건을 비교해서 설득력을 높이려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대법원에서 심리가 길어지면서 약간의 기대감이 들었다.
대법원에서 일년여 심리끝에 파기환송의 결과를 받았고,
또 한번의 예외적인 판례를 만들었다.
그러한 판례들이 축적되면서, 공무원과 사기업체 직원들의 출퇴근이 전혀 다르지 않은데 업무상재해로 인정되는 것이 다르게 처리되는 불합리(오로지 근로복지공단의 재정적인 부담 증가의 문제가 있었을 뿐임)한 문제는 법률의 개정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공무원이든 아니든 구분없이 출퇴근 재해는 업무상재해로 인정된다.
파기환송의 결과를 어머니와 남동생에게 전달하면서 어머니의 오열에 목이 매였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사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어렵게 승소를 했으나,
세상을 떠난 혜영씨는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니었다.
변호사는 때로는 사건을 선택해서 승부를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후회없이 지낼 수 있다
(다음에 소개할 아파트경비원 이야기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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